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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파괴왕
03 파괴왕
나는 평소에도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하다. 정말 작은 스트레스도 못 견뎌하는데 예를 들면 외출하기전 이어폰을 찾아서 당장 나가야 하는데 이어폰을 찾으러 온 방을 뒤지다가 그래도 찾지못하면 내 손에 집힌 모든 걸 던져버린다. 그러면 갑자기 모든것이 평온해지면서 만족한 얼굴로 집을 나선다. 이어폰을 못 찾았는데도.
스무 살 때는 남자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고 친구들과 놀 때 너무 부들부들 화가나서 폰을 아스팔트에 수차례 던져서 결국 부순 적이 있고.
어느 날은 노트북을 던져서 부수기도 했다. 삼성 노트북은 꽤 튼튼해서 한두 번 던져도 부서지지는 않았다. 결국 세차게 한번 세 번째 던지고 나서야 노트북 액정이 부서지고 말았다. 완벽히 부서졌어야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내 온몸을 휘감고 있던 스트레스 호르몬이 마법같이 싹 사라진다.
나는 파괴를 통해서야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전생에 파괴왕이었던 걸까... 나 같은 경우는 가정환경 문제일 것이다. 내 얼굴에 침 뱉기지만 엄마 아빠는 어릴 때부터 싸울 때 물건들을 부수곤 했었다. 우리 집에는 아직도 집 화장실 문이 발자국 모양으로 부서져있다. 어릴 때 엄마와 동생과 함께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화가 나서 문을 열라며 문을 부섰다. 오랜만에 집에 갔을 때 아직도 그대로인 부서진 문을 보고 헛웃음이 났다. '우리 엄마 아빠는 자식들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구나...' 하고 씁쓸했었다. 평소에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부부싸움을 아주 화려하게 하셨다. 경찰들도 온 적이 있고... 집전화기가 부서져서 몇 번을 바꿨고, 온 가족이 깨진 그릇 조각들을 치우고는 했고, 싸움에서는 칼까지 던져지곤 했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무사히 살아있는 것은 기적인 것 같다. 부모님이 싸움을 할 때마다 난 내 방에 들어가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웅크려 앉아서 빌었다.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온몸에 스트레스 호르몬들을 가득 채워둔 채 부들부들 떨면서.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 추악한 모습을 나도 그대로 따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자식을 낳지 않을 거다. 남들에게 폐만 끼치는 좋지 않은 이 유전자는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 처음에는 그래도 이 징그러운 모습이 아무도 없을 때 튀어나오곤 했다. 나도 이 모습이 얼마나 남들에게 매력 없게 보이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연인과의 싸움에서는 이 모습을 숨길수는 없었다. 가끔은 연일을 패기도 했었다. 그렇게 내가 먼저 폭력을 시작하면 결국엔 내가 더 맞았다. 지하철역 안에서 서로 패고 목도 조르고 있으니 사람들이 신고를 하여 스무 살 때 처음으로 경찰서에도 갔다. 서로 쌍방으로 고소를 했다가 이틀 만에 서로 미안하다고 엉엉 울며 화해를 하고 경찰서 연락을 받지 않았는데 이후 나와 상대방은 '기소유예'라는 처분이 떨어졌다. 왜 연인 앞에서만 이런 모습이 튀어나올까. 아마도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채 그 마음을 연인에게 쏟아부으면서 의지를 하고 살기 때문 일 것 같다. 내가 너에게 마음을 이만큼 쏟아부었으니 너는 나에게 이러면 안 돼.라고 혼자 마음대로 상대방에게 기준을 내세우고 내 입맛대로 판단해버린다. 기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에게 실수나 잘못을 하면 그 상황을 못 견뎌하고 스스로 드라마 주인공이 된듯냥 행동해버린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 마음을 주었으니 너도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해줘.'라고 생각해버리고 당연히 이해하고 사랑해줄 거라 착각을 해버리고 만다. 십 대와 이십 대는 그렇게 보냈다. 나의 20대 인생에 대해 평가해보자면 한마디로 그냥 '불쌍한 인생'이었다. 이제는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 나에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에게 목숨같이 퍼주는 나의 마음 역시 남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 단지 부담스러운 행동이라는 것도 안다. 그걸 알게 된 이후에는 이미 나의 마음에너지는 타인에게 줄 수도 없을 정도로 메말라있었다.
조울증 약은 25살 처음 진단받고 먹게 되었으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에게 조울증은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 조울증과 함께하기 시작한 것 같아 최근에 의사 선생님께 물어보니 조울증은 청소년 시절에는 판정을 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청소년기 특성이 조울증 특성과 비슷하기도 하고 어릴 때에는 그렇게 심하게 특성이 튀어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엄마가 너무 미워서 반항하기 위해서 극단적으로 행동하기도 했었는데 자해나 흡연들... 지금 생각해보면 사춘기가 아니라 조울증 증세였던 게 많았던 것 같다.
스스로 내 정신이 이상하다는 걸 안거는 스물 중반 때부터였다. 스물 중반부터 기이한 짓들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폭력성이었다. 폭력성이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만원 버스를 탈 때 누군가가 새치기를 한다거나 지하철을 탈때 내리는 사람이 먼저고 다 내리고 나서 지하철에 올라타야 하지만 그걸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직접 겪을 수도 있는 일들이다. 나 역시 평소에 그런 사람을 봐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어느 순간에는 그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어지고 그걸 넘어서서 내가 과격한 행동을 취할 때가 생긴다.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사과를 하지 않고 간다면 평소 같으면 그러려니 넘기는 일이지만 어느 날에는 갑자기 스위치가 ON 되는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그 사람을 기어코 쫓아 가 폭행사고까지 이어질뻔한다.
어릴 때부터 나는 트리플 A형에다가 mbti는 열 번을 검사해봐도 INFP유형이 나오며 목소리는 작고 발표하는 날에는 청심환을 두 개나 먹고 정신과에서 일부러 약까지 타 먹고 다음날 발표를 하는 극 소심한 성격에 주변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이런 내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해보라고 현금 100만 원을 건네준다 해도 고민하고 거절할 일이다. 내 간헐적 분노는 가족과 오래 사귄 연인 앞에서만 볼 수 있는 굉장히 한정된 일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 중반이 되고 나서는 그 분노가 모르는 타인들에게도 향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라 그런 일들을 겪고 나서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인터넷 댓글들을 보면 분노조절장애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은 영화배우 마동석 앞에서는 조용할 거라고 얘기를 하는데... 그건 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보통 지하철이나 공동규칙을 어기는 아파트 주민과 트러블이 나고는 하는데 대부분 덩치가 큰 남자 어른들과 싸움이었다. 개중에는 아주머니, 내 또래 여자아이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남들과 다투는 모습은 최대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절대 보이기 싫다.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오래된 연인 앞에서는 보이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너 그러다 잘못 걸리면 칼 맞을까 무섭다.'라고 계속 말했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 항상 나를 걱정해주던 연인은 웃기게도 가끔 이런 나의 특성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컴플레인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뒤로 쏙 빠지곤 나를 앞세우곤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불합리한 일을 당할 때 항상 본노가 발현되는 건 아니다. 조증 삽화가 가장 심할때 일어나는일인데 조증삽화가 가장 심할 때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온몸으로 흘러 '한놈만 걸려라.'라는 마음이 내 몸 깊숙한 곳에 존재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다.
오늘은 냉우동을 집어 던졌다. 냉우동을 배달로 시켜먹고 정리를 하는데 비닐봉지에서 우동 국물이 세고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스트레스 게이지가 100%를 넘어서서 그 비닐봉지를 벽에 던져버렸다. 던지고 나니깐 온몸에서 끓던 피가 차갑게 팍 식었다. 스트레스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일분 동안 멍 때리고 있다가 휴지와 물티슈를 가져와 닦았다. 벽지에도 갈색국물이 스며들고 멀리 있는 창문에도 국물이 튀겼다. 바닥에는 간장 냄새가 배어 아무리 닦아도 간장내가 났다. 그래도 화가 나지않았다. 정말 스스로가 이상한것 같다. 보통 이럴경우 치우면서 현타가 온다는데 나는 현타보다는 만족감이 느껴진다. 내 자신이 평온해지려면 파괴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만약 나에게 배우자가 될 사람이 있고, 이런 모습을 본다면 나와의 결혼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반려자의 모습으로는 최악인 폭력적인 인간 모습일 거다. 나 같아도 이런 사람과 함께 살수는 없을 거 같다. 덕분에 나는 강제적으로 비혼 주의가 되었다. 나도 결혼은 마음을 비운 지 오래다. 스스로도 스스로 모습이 꼴 보기 싫을 때가 많고 이런 성격의 dna와 환경을 아이에게 물려주기가 싫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혼자 스스로를 치료하면서 극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언제쯤이면 나 자신이 안정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약 복용 5년 차인 지금까지는 지치지 않았다. 파괴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려고 하고 있다. 평소에 요가를 하면서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고 조금은 우울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하려 명상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정적인 명상은 우울 삽화 때에는 나에게 오히려 더 독이되었다. 안그래도 많은 잡념들 덕분에 우울삽화시기에는 공황발작과 과호흡을 달고사는데 명상을 시작하면 계속 부정적인 감정이 몰려오고 그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지않기위해 노력하면 그 부정적인 감정들은 나를 괴롭히고자 더 적극적으로 나에게 달려들곤했다. 나는 정적인 명상보다는 몸을 사용하는 동적인 명상이 더 맞는듯하여서 춤을 추거나 감정과 분노를 표출하며 울부짖는 조금은 무섭게 보일수있는 그러한 명상들이 더 도움이 되었다. 정적으로 가부좌를 틀고 하는 명상은 유투브나 넷플릭스, 무료,유료 어플들이 많아서 따라하면되고 동적인 명상들도 유투브에 active meditation 이라고 검색하여 따라하면 된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한달정도 방법을 배운뒤에 집에서 혼자 가끔씩 하고는 한다. 문제는 조증삽화때에는 조울증에 대해 활발히 찾아보고 극복하려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반면에 우울삽화가 오면 아예 나 자신을 놔버리게 된다는거다. 운동도 명상도 책도 읽지않은채 침대에서만 하루를 보낸다. 나는 일년에 조증삽화보다는 우울삽화가 훨씬 많기때문에 우울삽화를 잘 보내는게 더 중요한데 우울삽화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니 그게 안타깝다. 조울증은 가족들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병이라는데 우리 가족들은 내가 조울증이 심각하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문제가 있어서 약을 먹는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단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정도인지 안다. 나는 가족들의 평화를 위해 앞으로도 절대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장녀로서 내가 조울증으로 처참하게 망가져 자취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기가 싫다. 엄마는 내가 엄마의 자랑이라고 한다. 가족 중에 유일하게 대학원까지 나와서 앞으로 멋진 삶을 살아가리라고 굳게 믿고 있는데 한해 두 해가 가도 취업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핑계를 대야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코로나라는 핑계가 있어서 취업이 힘들다고 말할수 있겠지만... 나는 내 정신상태가 사회생활을 할수없을정도로 심각하다는걸 스스로 안다. 이년전 내가 원하던 곳에 취직이 되었을때 나는 일을 하다가 도망쳐버렸다. 처음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세상이 계속 핑핑 돌아가고 있었고 귀가 물안에 있는듯이 먹먹하고 눈의 시선을 도저히 어디에다가 둬야할지 모를정도로 눈의 초점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며 불안정했다. 회사에서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질까 무서워 지금 몸이 좋지않다고 말하고 회사를 뛰쳐나와버렸다. 그 이후로 나는 취직활동을 그만두었다. 회사에도 민폐라 생각했기때문이다. 그 경험을 한뒤에 나는 우선 내 몸과 마음을 치료한뒤에 돈을벌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나아지지않았고 이 백수생활도 꽤 괜찮게 느껴졌다. 남자친구 집에서 얹혀살면서 외출도 하지않고 쇼핑이나 나에 대한 물건도 사지 않으니 그럭저럭 생활은 되었다.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조증 삽화 기간 때에는 대출을 하여 비트코인과 주식을 시작하였다. 잠도 자지 않고 코인을 하다 보니 돈을 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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