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_ 2012)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_ 2012)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감독: 이안

주연: 수라즈 샤르마 (소년 파이), 이르판 칸 (성인 파이), 라프 스팰 (작가)

신(God)

글을 쓰기 위해 인도를 여행 중이던 작가는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파이 파텔'을 만나러 가라는 조언을 듣는다.

신을 믿지 않는 작가에게,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신'을 믿게 될 거라는 말과 함께.

원작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얀 마텔의 원작소설은 우리나라에서 "파이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고, 여전히 "파이 이야기"로 출간되고 있다. 영화를 보려고 계속 "파이 이야기"로 검색하다가 제대로 못 찾고 좀 헤맸다.

책의 앞부분 거의 100페이지는 파이의 인도 생활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정말 좋았기 때문에 영화에서 너무 압축해버린 것은 조금 아쉬웠다. 파이가 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작가는 아주 정성스럽게 풀어놨는데, 사실 이 부분을 이해해야 왜 파이를 만나면 '신을 믿게 될 거'라고 말했는지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이는 "모든" 신을 "모든" 방법으로 사랑한다. 힌두교도로 태어나 힌두교도로 자랐지만, 기독교를 만난 후 기독교의 방식으로 기도하고, 이슬람교를 만난 후 메카를 향해 하루 다섯 번 절도 하던 소년 파이는, 성인이 되어 유대교 전통을 연구하는 교수가 되었다. 그는 '종교'가 아닌 '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편견이나 편가르기가 없다. 그가 '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종교인의 방식이 아니다.

조금 촌스러운 버전의 포스터.

태평양 한가운데서 리처드 파커는 그에게 '일종의 신'이었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신을 믿게 될 거라고 했던 말은 리처드 파커의 이야기를 믿게 될 거라는 말과 다르지 않고, 작가는 파이와 이야기를 한 후에 그 남자의 장담처럼 신을 믿게 되었다. 리처드 파커의 이야기를 믿게 되었으니까.

리처드 파커

시종일관 "리짜드 빠꺼"라고 부른다.

'리처드 파커'는 정신없었던 세관 직원의 실수로 사람 이름을 갖게 된 뱅골호랑이다.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과 함께 조난된 배에서 떨어져 구명보트에 탑승한 동물들 중 하나였다. 좁디좁은 구명보트 위에서도 자연의 법칙은 작용하는 것인지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결국 살아남은 것은 생태계 최종 보스인 인간 파이와 호랑이 리처드 파커 뿐이다.

여러번 기회가 있었음에도 리처드 파커가 파이를 살려두기로 결정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그에게 먹이와 물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혼자는 두렵거나 외로웠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귀찮았을 수도 있다.

직립보행이라는 불합리한 자세 때문에 신체 능력으로는 포유류 중 거의 바닥을 차지하는 인간에게 거대한 두뇌를 허락해 결국 생태계 꼭대기에 올려놓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영화에서 동물 CG는 아주 생생하다. 뭔가 크기가 좀 오락가락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특히나 리처드 파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은 압도적이고, 실제로 조금 무서웠다. 멀리서 본 호랑이는 발도 뚱뚱한 게 귀엽기도 하고, 물놀이 좋아하는 큰 고양이 같기도 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친다면 그렇게 압도당하겠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라이언킹' 실사판이 개봉했을 때, 털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재현해 낸 CG에 오히려 조금 위화감이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2012년의 CG가 내 정서에는 더 맞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재미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영상미다. CG인 게 티가 나든 말든 상관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바다는 절대 조용하지 않다. 망망대해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의 모습을 정말로 잘 담아냈다.

리처드 파커, 왜 혼자 있어요? 파이는 먹었나요?

마지막 인사

구출된 파이는 주저앉아 길고 긴 울음을 터트린다.

그의 긴 울음의 이유는 리처드 파커가 인사도 없이 숲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에게 '우리가 해냈다'고 '잘했다'고 '고마웠다'고 말하지 못해서, 그가 아쉬운 것 하나 없다는 듯 단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버려서. 나도 좀 같이 서운해졌다. 리처드 파커는 왜 매정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을까.

리처드 파커에게는 작별인사가 필요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파이의 마음 속에 영원히 같이 살고 있을 테니까.

작별인사는 떠나야 할 사이, 만나지 못할 사이에 하는 것이니 파이에게서 떠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눈에 보이는 모습만 감출 뿐이었다면 리처드 파커에게는 파이와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리처드 파커는 파이에게 '일종의 신'이었고, 파이는 언제나 '신들'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 사람이니까.

그것을 알아도 파이는 서운하고 나도 서운한데, 어차피 인간은 신에게 투정하는 존재인 것이다. 믿든 믿지 않든.

나도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어요, 파이.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와 동물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

폭풍우를 만나 난파된 배에서 구명보트를 타고 떨어져 나와 227일간 태평양을 표류하며 겪었던 파이의 이야기에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한다. 두 이야기를 모두 들려준 파이가 묻는다. "어떤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드나요?"

작가가 독자에게 묻는 질문이고, 감독이 관객에게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당신은 이야기의 힘을 믿나요?" 라는 질문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류를 고난에서 일어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게 하는 힘이자 각색하고 다듬어 상처를 치유하게 하는 힘이 "이야기"에 있음을 믿는지 "이야기꾼들"이 질문한다.

이들에게 '이야기'는 일종의 '신'이다.

시바 신에게 예수를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던 파이에게는 이야기가 가진 힘이 그렇듯 편견이나 편가르기가 없다. 그가 '신'을 사랑하는 방식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방식과 닮았다.

그래서 리처드 파커의 '이야기'를 믿기로 한 작가의 마지막 선택과 난파 조사원들의 선택은 '신'을 믿기로 한 선택이다.

작품 속에서 그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들과 작품 밖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대답은 아마도 동일할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믿고 이야기의 힘을 믿어요, 파이.

from http://evening-shadow.com/14 by ccl(A) rewrite - 2021-07-15 16: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