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의 함정 - 원조 국밥 이야기

창의성의 함정 - 원조 국밥 이야기

원조(元祖). 원조라는 단어는 정말로 자극적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창조해낸 것이다. 창의적인 열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원조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원조라는 것은 그 의미가 담고 있는 무게보다는 헤프게 쓰이는 것 같다. 예컨대 국밥집이나 족발집에 원조라는 단어가 붙으면 용어는 곧바로 흥취를 잃어버리고 만다. 왜 그런 것일까. 원조 그 자체가 성공을 보장해주는 지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어떠한 개념을 창안해내는 것은 위대한 일이며 인류 진보의 원동력이다.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도전에 의해 깨어졌지만 진보를 이룩한 사람들은 바로 그 도전자들이다. 그러나 창의성의 함정이 있다. 우리의 가시권에 벗어난 도전들 대부분은 실패로 끝났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늘 최적의 효과를 약속해주지 않는다. 현실이란 머릿 속의 상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떻게 하든지간에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체적으로는 사회적 생활을 포기할 수가 없다. 극소수의 괴짜만이 그런 것을 해내는 듯하다. 그러나 불금에 허전함을 느끼는 일반인이라면 당신도 절대다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가 있다. 가장 빛나는 아이디어라도 현실에서,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혁신의 타이틀을 가진 현시대의 영웅들을 생각해보자. 일상의 소통 메커니즘을 바꾼 페이스북은 원조인가. 페이스북 이전에는 사실 마이스페이스가 파란을 일으켰었다. 스마트폰은 어떤가. 프로토타입을 생각해낸 사람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성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특출난 아이디어에 더해 1. 실행력, 2. 기존 시스템에 대한 이해력, 3. 사회적 영향력이 뒷받침되어줘야만 아이디어라는 것이 세상에 실현될 수가 있는 것이다. 한 시대의 파란을 일으킨 사람들의 사실 2세대, 3세대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뤼미에르가 영화 영상 개념을 창조해낸 위업을 달성했지만 말년까지 주목받지 못하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창조를 하고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아이디어를 섣불리 세상에 꺼내놓았다가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큰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다. 단도리를 해놓지 않으면 심지어 아이디어를 도둑맞을수도 있다. 또한, 창조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사회적 역할을 경시하기 십상이다. 아이디어를 실현시킬만한 현실적 힘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능력을 과신해서는 안되며, 창조적 능력을 보물처럼 둘러싸안고 소통을 거부해서도 안된다. 거리로 나가서 사람들과 소통하며 당신의 생각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정지작업을 해놓는 것. 그것 또한 창조자의 의무이다. 그렇지 않다면 천재일우의 기회를 만나더라도 별 수 없다. 국밥집마다 내걸린 ‘원조’ 간판처럼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모두 건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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