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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영화 리뷰
인셉션 영화 리뷰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꿈이란 대체 무엇일까? 어떤 날의 사건을 반복하거나, 실수나 안타까움 같은 감정들이 증폭되어 나타나거나, 먼 옛날의 추억이 불현듯 떠오르거나, 잠재워둔 잊고 싶은 기억이나 무의식 같은 것들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 보이기도 하고. 아무리 프로이트가 꿈의 영역을 파헤쳐놓았다 해도, 여전히 꿈은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심해보다도 깊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꿈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 하나는 있다. 꿈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 나의 설계(상상)로, 나만의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다는 것.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셉션>은 어떠한 환상도 가능한 꿈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근미래, 타인의 꿈속에 들어가서 숨겨둔 기억을 빼내는 기술이 가능해진다. 수배자 신분이어서 아들과 딸이 기다리는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세계를 떠돌던 '추출' 전문가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성공하면 모든 것을 돌려주겠다며 '인셉션' 제의가 들어온다. 재벌인 사이토가 경쟁 기업의 후계자에게 모종의 기억을 심어 달라는 것이다.
꿈속에서 벌어지는 모험극 <인셉션>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인셉션>의 꿈속 장면을 보면 대도시의 거리가 수직으로 접히고, 화려한 호텔복도가 무중력 상태로 변하고, 느닷없이 설원에서 총격전이 벌어지는가 하면, 아무도 존재하지 않은 채 서서히 멸망해가는 도시가 나온다. 꿈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인셉션>이 더욱 흥미로운 이유는 상상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그 꿈의 세계 때문이다. 모든 것은 크리스토퍼 놀런의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열여섯 살 때 처음 <인셉션>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10년 전부터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던 크리스토퍼 놀런에게 중요한 것은, 그의 상상을 그대로 영상으로 재연하는 것이었다. 아리아드네가 '설계'한 공간이 그대로 꿈속에서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게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인간의 상상을 물질화하는 영화의 본질이기도 하고.
꿈과 현실의 경계
영화 속에서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추출보다 기억을 심는 인셉션이 더욱 힘들다고 말한다. 그냥 기억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억을 갖게 된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냉혈한이던 기업가가 어느 날 갑자기 자선사업가로 변신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이유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잊고 있던 기억을 되살려 주었거나, 그의 신념과 철학을 바꿀 만한 거대한 사건을 겪었다거나 등등. 인간은 결코, 그냥은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동인과 근거가 그의 내부에 있어야만 한다. '인셉션'은 단순히 기억을 심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일지라도, 그것은 곧 현실로 전화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꿈이 곧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인셉션>을 만들기 위해 참조한 영화들로 <매트릭스>(1999), <블레이드 러너>(1982), <다크 시티>(1998) 등을 꼽는다. <매트릭스>에서는 기계의 노예가 된 인간들이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전혀 육체는 움직이지 않고, 꿈속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네오라는 구세주가 등장하여 인간을 깨어나게 만들지만, 과연 무엇이 더 행복한 것일까?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가상현실이, 단지 꿈이라는 이유로 불행한 상태인 걸까? <인셉션>에서 코브는, 꿈에 취한 아내에게 꿈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심어준다. 그 결과 그녀는 현실에 돌아와서도 이곳이 꿈이고 거짓이라고 믿게 된다. 오히려 그곳이야말로 영원한 피안이라며 도망치려 한다. 그녀에게는 어디가 과연 현실이었던 걸까.
매우 잘 짜여진 영화
크리스토퍼 놀런이 <인셉션>을 10년이나 끌어온 것은 막대한 제작비가 필요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이전 작품에서도 이미 <인셉션>의 주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변주해왔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메멘토>(2000)의 주인공은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단서를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남긴다. 몸에 새겨진 증거들은 확고부동한 '현실-리얼리티'다.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의도적으로 거짓 증거를 문신으로 새겼다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남겼다면? 그가 지금 아는 현실은 거짓이 된다. 문신으로 새겼다고 해도 그것이 절대적인 리얼리티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현실로, 미래의 자신을 밀어 넣은 것뿐이다.
<인셉션>은 대단히 정교한 영화다. 꿈에서 꿈으로 계속 들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영화 속에 나오는, 네덜란드 화가 모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무한히 반복되는 계단처럼, 벗겨내고 벗겨내도 근원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은 몽롱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인셉션>을 굳이 논리적으로 확인하며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인셉션>을 굳이 논리적으로 확인하며 보지 않아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인셉션>은 마치 <식스 센스>(1999)처럼 교묘하게 감춰진 멜로드라마이기도하다. 아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현실을 포기한, 이내 현실에서 살아갈 수 없는 남자의 슬픈 이야기. 그 비극적인 여정이 무수한 꿈속의 모험으로 치환되어 그려지는 영화가 바로 <인셉션>이다. 사랑의 확인이야말로 사람들이 믿고 싶은 가장 중요한 리얼리티 가운데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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