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과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과 에밀 아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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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La vie devant soi)'과 에밀 아자르에 대해 잘 알려진,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몇 가지 정보를 정리해보려 한다. 그리고 개인적 만족을 위해 생각나는 TMI와 내 간단한 여담도 몇 가지 끄적여본다.

1.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 (사진 출처: 경향신문 [책과 삶]로맹 가리의 '질주', 모디아노의 '기억'에 매혹되다)

에밀 아자르(Emile Ajar)는 작가 로맹 가리(Romain Gary / 본명(?)은 로맹 카체브(Roman Kacew))가 썼던 필명이다. 그러니 사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로 동일 인물이고, 같은 인물이 두 가지 이름으로 각각 소설을 낸 것이다. 로맹 가리로 활동하다 에밀 아자르로 첫 소설을 발표한 것은 60세가 되던 1974년이며, 이후 두 이름으로 작품을 번갈아 발표했다. 에밀 아자르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은 당시 예술계에서 찬사를 받았지만, 말년의 로맹 가리로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1980년 권총 자살을 할 때까지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인 것은 세상에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이 사실이 밝혀진 것은 죽은 이후 발표된 본인의 글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Vie et mort d'Emile Ajar)'을 통해서이다. 로맹 가리는 소설가 외에도 영화감독(배우 진 세버그(Jean Seberg)와의 사랑이 유명하다. 관련한 책도 있다.), 외교관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젊었을 때는 법학을 전공했고, 2차 세계 대전도 참전했었다... 참고로 에밀 아자르가 가장 유명한 필명이지만, 로맹 가리 필명은 에밀 아자르 외에도 여러 개였다고 한다.

2. 공쿠르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유일한 작가

공쿠르 형제 (사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렇기에 에밀 아자르는 프랑스 문학상인 공쿠르상(Le Prix de Goncourt)을 두 번이나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왜 유일한가 하면 공쿠르상은 한 작가에게 한 번만 수여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1956년 '하늘의 뿌리(Les racines du ciel)'-세상 간단히 줄여보면, 아프리카 배경의 코끼리에 관한 이야기(?)-로 로맹 가리는 한 차례 공쿠르상을 받았는데, 1975년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에 공쿠르상이 또다시 수여된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와 동일 인물인 것이 밝혀지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에밀 아자르는 수상 거절 편지를 보냈지만, 수상작을 결정하는 공쿠르 아카데미는 한 작품에 수여되는 공쿠르상에 수락과 거절은 따로 없다...며 그대로 수여한다. 참고로 공쿠르상은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공쿠르 형제 중 형인 에드몽의 유언에 따라 1903년 제정되었다.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상금은 원래 50프랑이었는데 유로화로 바뀌며 현재는 10유로다. 콩쿠르나 콩쿠르상 아니고 공쿠르상이다(나는 글자가 정확히 공쿠르상이라는 걸 인지하는데 한참 걸렸다).

3. 책 '자기 앞의 생'과 한국에 끼친 영향(?)

책 초판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The Life Before Us') / 책 <자기 앞의 생>과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사진 출처: 커넥츠북 '자기 앞의 생')

책 '자기 앞의 생'은 모모라는 소년의 시선으로 함께 지내는 로자 아줌마와 아이들, 하밀 할아버지, 롤라 아줌마, 카츠 선생님, 그리고 아르튀르 등 세상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느낀 점은 따로 쓰진 않을 예정이지만, 모모는 매우 특별한 아이고 '자기 앞의 생'은 매우 특별한 이야기다. 자기 앞의 생의 뜻을 생각해보면 해석의 갈래가 여러 개일 거 같기도 한데, 원어 제목은 여생, 앞으로 남은 생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정식 저작권 계약을 처음 맺고 출판한 것은 용경식 번역의 문학동네 책 같다(책 뒤에는 글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에는 마누엘레 피오르(Manuele Fior)가 그린 일러스트가 함께 있는 버전도 문학동네에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 책 중 한 권으로 꼽히는데, 한 가지 예로 유명인이 자신의 인생 책을 추천하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꽤 많이 추천되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도 작가와 책이 방송에서 소개되거나, 예술에서 차용되거나 대중문화에서도 나온 적이 꽤 있다. EBS 방송이나 팟캐스트에서도 다뤄진 적이 많고, 가장 최근 드라마로는 '아무도 모른다'에서 비중 있는 소품으로 나왔다고 한다(지만 난 해당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다). 또 “모모는 철부지~"하는 그 노래인 김만준의 1978년 데뷔곡 '모모'도 이 책의 주인공 모모에서 따온 것이다. (미하엘 엔데의 책 '모모'에서 온 것이 아니다!) 노래의 작곡가와 가수 모두가 노래의 모모는 '자기 앞의 생' 주인공 모모라고 말했다. 작곡가 박철홍은 고등학생 시절 사고로 병상에 있을 때 책을 읽으며 모모와 자신의 처지가 비슷하기 느껴져 곡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다만 어디에서인가 1974년에 이 곡을 썼다는 정보가 있는데 작곡가의 생년으로 보나 (많이 양보해 학년을 월반했다고 하더라도) 에밀 아자르가 책을 발표한 년도로 보나 절대 1974년에 쓴 곡은 아니지 않을까 추측한다... 애니웨이, 이 노래의 히트로 노래에서 영감을 받은 연극도 나오고, 영화 '모모는 철부지'도 나왔다고 하니 이 모든 모모는 '자기 앞의 생' 모모의 영향을 미약하게나마 받은 셈 아닐까.

4. 또 다른 '자기 앞의 생'들

연극 '자기 앞의 생' 포스터 (사진 출처: 국립극단 홈페이지) / 영화 '자기 앞의 생'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자기 앞의 생')

책 '자기 앞의 생'을 아예 원작으로 해 만든 연극과 영화도 있다. 연극은 2007년 자비에 제이야르가 각색해 초연했는데 꽤나 호평을 받은 것 같다(이 역시 추측이다). 한국에서는 이 작품을 2019년에 처음 선보였는데 나는 그 때 보지 못했고, 코로나로 언제 또 볼 기회가 될지 모르겠다... 넷플릭스영화 '자기 앞의 생'은 2020년 11월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이탈리아 영화이다. 에도아르도 폰티(Edoardo Ponti)가 감독했고, 이브라히마 게예(Ibrahima Gueye)와 소피아 로렌(Sophia Loren)이 각각 모모와 로자를 연기했다. 영화는 책의 내용과 등장 인물을 단순화하고 여러 설정을 바꿔 각색했는데, 작품성 측면에서 좋은 시도 같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 책이 훨씬 다면적이고 모모라는 아이가 맺는 우정이나 세계를 보는 시선을 더 잘 이해하며 공감할 수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5. 개인적 여담

책 '하늘의 뿌리',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내 삶의 의미' (사진 출처: 알라딘 각각 책 검색)

두서없이 생각나는 여담을 써보자. 에밀 아자르이자 로맹 가리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말할 때 단골로 들어가고, '자기 앞의 생'은 내가 종종 반복해 읽는 인생 책 중 한 권이다. 그래서인지 언젠가 다루고 싶지만, 선뜻 글을 쓰기 더 힘든 책이라 이런 정보 제공의 글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나보다도 더 생각을 잘 정리해 해석한 수많은 팟캐스트가 있을 것이다 껄껄.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는 사실 내가 느끼기에 굉장히 다른 스타일인데(하지만 난 원서를 읽은 게 아니니 번역의 영향도 크겠지), 단순히 '하늘의 뿌리'와 '자기 앞의 생'만을 놓고 말해보면 난 '자기 앞의 생' 스타일이 훨씬 좋다...고 몇 년 전에 생각했었다. 로맹 가리 책 중에 단편집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Les Oiseaux vont mourir au Pérou)'(원래 로맹 가리가 선택한 단편집 제목은 책에 수록된 다른 단편 '우리 고매한 선구자들에게 영광 있으라'인데 한국에서는 다른 유명한 단편 이름이 책 제목으로 나왔다)도 잘 알려져 있는데, 나는 수록 단편 중 '휴머니스트'와 '벽'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다. 로맹 가리라는 인물이 궁금하다면, 죽기 몇 달 전에 라디오 방송에서 스스로 삶을 돌아본 것을 책으로 낸 구술 회고록 '내 삶의 의미(Le Sens de ma vie)'를 추천한다. 참고로 로맹 가리 작품에는 자전적 소설이나 본인의 삶과 경험이 묻어나는 경우가 꽤 많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포스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번에 넷플릭스 영화 '자기 앞의 생'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난 ‘응? 원래도 영화화된 게 있지 않나?’ 싶었는데, 몇 년 전 TV 채널을 돌리다 '자기 앞의 생'을 연상시키는 영상 일부분을 봤던 거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찾아보니 못 찾았다. 아마 기억이 오래돼 다른 영화를 착각한듯하다. 이 외에도 '자기 앞의 생'과 연과돼 떠오르는 영화가 있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왠지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맴돌았다. 혹시 관심 있는 분들은 책 '자기 앞의 생'과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연관 지어 감상하셔도... 물론 내 개인적 추천이다... 열심히 기억을 떠올리고 정보를 검색해 확인하며 글을 썼는데 잘못된 정보 제공이 적다면 좋겠다!

참고해 찾아본 것들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로맹 가리’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로맹 가리’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공쿠르상’ 및 ‘공쿠르 형제’

네이버 지식백과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프랑스문학 ‘자기 앞의 생’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대중가요앨범11000 - 가요앨범 리뷰 ‘김만준의 새목소리 / 모모’

네이버 지식백과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 프랑스문학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네이버 지식백과 죽기 전에 꼭 읽어야할 책 1001권 ‘천국의 기원’

네이버 영화 ‘자기 앞의 생’

네이버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네이버 책 ‘자기 앞의 생’ 및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네이버 책 ‘내 삶의 의미’ (문학과지성사)

네이버 책 '하늘의 뿌리'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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