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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 일기 0295] 반갑다 친구야!
[걷고의 걷기 일기 0295] 반갑다 친구야!
날짜와 거리: 20211101 12km
코스: 월드컵공원과 난지공원
평균 속도: 4km/h
누적거리: 5,249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늦은 오후 네 시경 걷기 위해 집을 나선다. 예상외로 불광천이나 월드컵 공원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뒷짐 지고 여유롭게 걸으며 하늘도 쳐다보고 떠다니는 구름도 올려본다. 눈을 사로잡는 단풍이나 좋은 경치를 보며 사진도 찍는다. 월드컵 공원에 들어서니 노을이 펼쳐진다. 나뭇 사이로 해의 여광을 가리를 구름을 통해 멋진 노을이 펼쳐진다.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보다 약간 자신을 감추듯 은은히 보이는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다. 날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월드컵공원을 지나 유아 숲길을 걸었다. 두 아이와 엄마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은 더 놀고 싶어 하고 엄마들은 어둡기 전에 집에 가자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엄마와 아이들의 실랑이는 사랑이다. 난지천 공원에 들어가니 낙엽과 단풍 세계가 멋지게 펼쳐진다. 날씨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차분해지며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 한 친구는 은행에서 평생 근무하다 퇴직하고 지금은 문경에서 사과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이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여전히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니 밝게 웃는 얼굴 밑에 ‘사과농부’라는 글이 쓰여 있다. 자신을 가장 쉽고 단순하게 잘 정리해서 표현하고 있다. 워낙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품이 넉넉한 친구여서 문경에 내려가서도 주민들과 잘 소통하며 현지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한때는 친구들과 자주 찾아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도 많다. 저녁에 술 한 잔 하고, 다음 날 아침에 같이 사우나에 가서 샤워를 한 후에 아침 식사를 하고 서울로 돌아오곤 했던 즐거운 추억. 오랜만의 통화지만 서먹함이 없는 편안한 통화가 반갑고 고맙다.
최근에 다른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했다. 함께 같이 어울려 지냈던 신 교수와 동명이인인 사람이 TV에 나와서 신 교수에게 전화를 했고, 내킨 김에 내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호텔에서 근무할 때 만난 친구이니 35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이다. 그 친구 역시 지방에 내려 간 이후 한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다. 오랜만에 전화 목소리를 들이니 반갑다. 지금 경주에서 한 기업체의 대표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제 서서히 물러날 때가 된 것 같다고 한다. 그 친구가 부산 한 특급호텔의 총지배인으로 근무할 때 일식당에서 ‘오마카세’를 사 준 적이 있다. 그때 그 음식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왜 돈을 벌고 좋은 음식점에 가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해 준 음식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당시 먹었던 ‘오마카세’와 그 음식을 사준 친구 자랑을 하곤 했다. 그 친구도 내가 음식을 맛있게 먹고 좋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한번 경주에 내려오면 그 맛에 상응하는 음식을 사준다고 한다. 어리광을 잘 부리는 마음 따뜻한 친구의 초대가 반갑고 고맙다.
한 친구 역시 호텔에 근무할 때 만난 친구이다. 지금은 강릉에서 살고 있다. 병원 치료 후 건강 회복을 위해 공기 좋은 강릉에서 머물다 눌러앉은 친구다. 한 동안 연락이 끊겨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신 교수 장인어른 문상을 위해 강릉에 가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다른 친구들과 강릉에 찾아가서 함께 걷고 신선한 회를 곁들여 소주 한잔 하고 오기도 했고, 혼자 강릉으로 내려가서 함께 해변을 걸었던 기억도 있다. 지금은 강릉 바닷가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아파트에서 아내와 둘이 오붓하게 살고 있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촌철살인의 위트를 갖고 있는 친구다. 그 친구는 강릉 해변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일을 소일거리 삼아 야인처럼 살아가고 싶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플로깅 (plogging)의 원조인 셈이다. 실천 여부를 떠나서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선비 같은 친구다.
한 친구는 교수이다. 내가 늘 ‘의지의 한국인’으로 자랑하는 친구다. 호텔에 근무하면서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다소 늦은 나이에 호텔 경영학과 교수가 된 친구다. 늘 밝은 에너지를 주변에 전달해주는 친구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풍부한 현업 경험과 지혜로운 학자의 양면을 모두 지닌 친구로 평생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호텔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현업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학생들의 취업을 위한 노력을 매우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하는 친구이다. 그 친구 연구실에는 늘 사람들이 모인다. 상담하는 재학생도 많고, 졸업생도 많이 찾아오고, 시간 강사들도 자주 찾아온다. 그들이 찾아올 때마다 자신이 정한 방식으로 식사를 대접해서 보낸다. 스승의 날이 있는 달에는 학생들과 졸업생들과의 저녁 약속으로 즐겁지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고 한다. 딸들과의 데이트를 즐길 줄 알고, 아내를 도와 주방 보조 역할도 기꺼이 하는 다재다능한 친구이다.
한 친구를 제외하고는 60대 중반의 사내들이 12월 초에 경주에 모인다. 경주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주선하는 자리다. 저녁에 모여서 술 한 잔 하고, 다음 날 서너 시간 걷기 좋은 트레킹 코스를 걸을 계획이었으나, 친구들 면면을 볼 때 그 계획이 무의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현장과 실전에 강한 친구들이다. 모이면 마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친구들이다. 아예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럭비공 튀듯이 움직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60년 이상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긍정적인 경험도 많았을 것이고, 부정적인 상황도 많았을 것이다. 그 경험들을 통해 긍정과 부정 모두 우리 삶의 한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갖추게 되었다. 지혜의 눈으로 사람, 세상, 상황을 바라보면 좋은 일도 또 나쁜 일도 그냥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만나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상황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것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 이 친구들과 얼마나 자주 만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플 수도 있고, 더 먼 곳으로 이사 갈 수도 있고, 개인적인 상황으로 얼굴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여기 만남이 그만큼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다. 경주 모임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친구들이여!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경주에서 만나세. 그리고 함께 오래 보려면 서로의 건강을 챙겨주어야 함을 잊지 말고. 자네들의 건강이 내 건강과 다름이 아니네. 마찬가지로 자네들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나의 것이네. 반갑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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